※ 텍스트로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스크린샷에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.
내 스팀 라이브러리를 '메타크리틱 점수' 순으로 정렬하면 맨 앞에 나오는 그 게임, 디스코 엘리시움을 플레이했다. 플레이어의 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성과 노골적으로 편향된 정치적 선택지, 훌륭한 스토리를 가진 '포인트 앤 클릭' 장르의 게임... 워낙 유명한 게임이니 이 정도 정보야 얼추 알고 있었는데 솔직히 저런 텍스트만 보고 어떤 게임인지 감이 오나? 난 이 게임을 올클리어하고나서도 어떻게 소개해야할 지 모르겠다. 그러니까 첫 플레이의 순간부터 찬찬히 회상해볼까한다.
우선 내 첫인상은 이러했다.
이게 다 뭐야 씨발. 시작부터 무슨 '변연계'라느니 '원시 파충류 뇌'라느니 하는 놈들이 다짜고짜 형이상학적인 말들 내뱉더니 그 뒤를 이어 '백과사전', '논리' 따위의 박살난 자아들이 지들끼리 떠들곤 빤스한장 차림으로 이 세계에 유기해버린다....그래~ 뭐 그럴 수 있지. 어지간히 힙하구만. 그럼 어디 RPG 게임의 꽃인 스킬 좀 둘러볼까?
이건 또 뭐야 시발. 뭘 어떻게 찍어야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겠는 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. 뭐 별 수 있나. 일단 진행해보고 그때그때 필요한걸 올려야지. 그래서 당차게 범인을 찾아나서면...
뭘 어찌해야할 지를 모르겠다. 안그래도 아는게 1도 없는데 정보는 너무 파편적이고, 무언가 해결되기는 커녕 까면 깔수록 개망나니인 주인공이 친 사고 때문에 해결해야할 목표만 왕왕 늘어나 멘붕에 빠진다. 그런데 이를 안내해야할 일지의 '목표'는 '계속 찾아보기', '이건 조금 오래걸릴 거임ㅋ' 이 지랄을 쳐대니 재미있을리가. 솔직히 말해서 일단 참고 플레이한다는 마인드로 상호작용 가능한 모든 오브젝트를 다 누르고 다닌 이틀차까지가 정말 고비였다.
하지만 어느 정도 게임의 문법에 익숙해지고 본격적인 수사가 가능해지는 3일차부터는 슬슬 즐길 줄 알게 된다.
도통 감이 안잡히던 스토리는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던 사이드퀘스트와 연계되며 무서울 정도로 풍부해지고,
어딜가도 꼽주기만하던 좆같은 새끼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과 주변을 지키고 있었을뿐인 매력적인 캐릭터로 변모하며,
의외로 이 게임이 마냥 정치얘기나 하는 엄근진하지만은않은, 나름의 유머로 가득찬 게임임을 체감시켜준다.
그렇게 정신없이 몰두해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서 든 생각은, 이 게임을 할 바엔 책을 읽겠다는 평가엔 절대 동의할 수 없겠다는 것. 텍스트 위주로 진행하는 게임이 과연 게임인가? 따위의 논쟁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. 호불호는 차치하고 이 게임이 선보이는 문법은 게임이어야 성립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.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사람은 어느 포인트를 집는지 바로 알아챌테고, 아닌 사람들은 그냥 안 맞는다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.
단, '매 플레이마다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'는 찬사에는 의문이 있긴 하다. 물론 스탯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긴 하는데... 결국 스토리 진행은 선형적이라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만 있을뿐 큰 줄기는 같아서 2회차때는 그냥 휙휙 넘긴 기억이 있다. 이 부분은 플레이하는 유저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지도.
의외였던건 도전과제가 빡셌다는 것. 뭐 당연히 포인트 앤 클릭 게임이다 보니 컨트롤이 부족해서 못깨고 그런건 없긴한데 조건이 촘촘하고, 빡세서 놓치기 일쑤고 한번 놓치면 그 도전과제 하나를 위해 리겜을 해야하는 지옥같은 피로를 선사한다... 나같은 경우엔 자잘한 실수때문에 불러오기는 자주했는데 다행히 1회차 프리플레이 - 2회차 하드모드로 어떻게든 전부 해결했다. 이러고도 47시간 가량걸렸으니 빡센거 맞지?
아 그래도 도전과제 중 하나인 '하드모드' 자체는 안 어려웠다. 하드모드니까 퀵세이브-로드를 막나?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단순히 주사위 판정이 조금 빡세지는 것 정도라서 후반부엔 체감도 잘 안되더라. 그러니 하드모드 + 나머지 도전과제를 한번에 처리할 지 걱정된다면 염려말고 트라이하기를 권한다.
마지막으로 본작의 핵심 개발자들이 '비자발적'으로 퇴사당했다고하는데... 이렇게까지 창작자들과 밀착된 게임의 공신들을 자른다고? 뭐 회사 나름의 이유야 수십가지를 들 수 있겠다만, 이들이 없는 회사에서 '디스코 엘리시움'이 (혹은 그 비슷한 게임이라도) 다시 한번 꽃필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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